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부정(不淨)함 VS 정(淨)함 (마가복음 7:1~23)

조찬일 | 2020.03.19 06:38 | 조회 272

부정(不淨)VS ()함 

인간의 계명 VS 하나님의 계명 

외식하는 자 VS 참 신앙인

    

  오늘 마가복음 71절에서 23절을 볼때 3가지의 대비를 염두하며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서울 지하철에서 노숙자가 앉은 자리 옆에 그 누구도 앉지 않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빨지않은 옷과 씻지 않은 까닭에 냄새나고 너무나 더러웠기 때문이었겠죠. 더러운사람..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교회도 예외가 아닐수 없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에 외모적으로 너무나 화려하고 화장이 짙은 딱 보면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자임을 알수 있는 한 여성분이 걸어 들어옵니다. 과연 그 여자분의 손을 잡고 함께 앉아줄 교회가 몇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이러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제자들 몇이 손을 씻지도 않고 떡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냄새나고 외모로 사람을 좀 평가해서 함께 하기 싫어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 버립니다. 부정하다, 더럽다, 거룩하지못하다,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너희들과 달라라고 대놓고 위선을 떨기까지합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는 방법도 몇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릇도 끓인물로 씻어야 하고 완전히 잠궈야해요. 생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일일이 규율(전통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사는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통은 나쁜게 아닙니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인거죠.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사람들 많이 모인곳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이 하나의 규칙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사람들 많은곳에 갈땐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전통이 되는거에요.

 

  그런데 마스크를 써야하는 전통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안쓰고로 사람을 판단하는 올무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전통주의가 되는겁니다.

 

  맹목적으로 전통을 신봉하는거죠.

 

  제사의식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있고 제사가 있는거죠. 산 사람 잘 살기 위해서 제사드리는건데, 자칫 제사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손 안씻고 떡을 먹으면, 손을 씻고 먹으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면 되지..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느니, 부정하니, 더럽나니 등의 판단을 하고 자기네들은 아주 깨끗하고 하나님 잘 섬기는것처럼 말하면 안된다는거죠 

 

  그래서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6절에서 머라고 하십니까?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겉은 잘 믿는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속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경배하지도 않은 사람..다른 표현으로 회칠한 무덤이라고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속은 시체가썩어가는데 무덤 바깥은 회칠을 해서 이쁘게 보인다는 겁니다.

 

  이사야의 말씀엔 벌써 예언되어져 있었습니다. 6,7절을 보시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느니라.

 

  장로들의 전통은 사람이 만든 계명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8,9절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절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자신들이 만든 규율과 전통이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물러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대단하죠. 이런 자가당착이 어디있을까요?

 

  자신들의 편의대로 말씀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위선을 떨었다는 겁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부모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것이라고 했습니다. , 부모님을 잘 모시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이죠. 그런데 11절을 보시면 너희는 이르되....너희 조상들이라는 선생들은 이렇게 가르치는데, 부모에게 드려야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된다면 고르반(아람어, 하나님의 예물)로 빼놔도 괜찮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님 섬기는게 먼저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상들은 이 말씀에 해석을 달기를 그럼에도 하나님이 먼저니깐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야하면 부모에게 안드려도 된다고 가르쳤다는겁니다.

 

  이 유권해석으로 예외 조항을 만들어 버렸어요. 이러니깐 자녀란 인간들이 이 가르침을 자기 유리한대로 사용해 버리는겁니다. 부모를 섬기고 드려야함에도 불구하고 고르반이라고 하고 그러곤 부모한테 안 드리는거에요.

 

  이게 인간적 가르침, 인간의 규율, 사람의 전통이라고 하는겁니다.

 

  기가찰 노릇이지요. 하나님께만 잘하면 되고 부모는 뒷전으로 해도 되는겁니까? 이런 배은망덕한 일이 어딨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부모 공경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없으세요.

 

  사람의 전통, 인간적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광수생각이라는 연재만화를 그린 광수라는 유명한 만화작가가 있는데요. 이 분이 고등학교 시절 친구따라 교회를 갔어요. 학생이니깐 아무 생각없이 슬리퍼, 츄리닝 차림으로 갔겠죠. 그런데 예배당엘 들어섰는데, 한 나이 많으신 분이 그러더라는 겁니다. “어딜 감히. 하나님의집에 오는데 슬리퍼에 츄리닝 차림으로 올수 있어?” 가라더라는겁니다.

 

  그 광수라는 작가는 그 후 다시는 교회를 안갔대요. 한 영혼을 놓친것이죠

 

  그렇게 말씀하신 분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우리는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외모가 내용을 담고있다는 식으로 여겨지는게 많거든요. 그런데 한가지 제가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 질문을 던져 보면 어땠을까? 슬리퍼에 츄리닝 입고 온 학생을 봤을때, 예수님이라면 이런 학생을 어떻게 대했을까하는 겁니다.

 

  과연 호통을 쳤을까? 아니면 잘 왔다라고 했을까? 각자의 판단에 맡겨봅니다.  

 

  치마를 입으면 여자답고 바지를 입으면 여자답지 않은걸까요?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나요? 단정하라고 했지 치마입으라 바지 입으라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 사람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어느새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위선을 가질 수 있는 위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거룩하니 거룩하지 못하니라고 평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전통, 규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고 있습니까?

 

  정말 더러운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재단하고 있는 내 자신의 마음이 더럽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18절에서 23절을 보시면 한마디로 결론 내리십니다. 정말 더러운 것은 너의 마음에서 다 나오는거야  

 

  내 자신이 이 정도인줄 아셨나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내 마음 속에 즐비하게 들어있음을 아셨나요? 십자가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만 하셨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시면서 내 자신을 한번 돌아보길 바랍니다.

 

  이 정도하면 괜찮게 신앙생활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에선 더러운 것들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886개(1/95페이지)
오늘의 말씀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886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강효민 41 2020.06.05 07:28
1885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강효민 193 2020.05.29 08:32
1884 시편 23편에서 깨닫는 2가지 강병철 121 2020.05.26 14:09
1883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강효민 177 2020.05.22 09:02
1882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어라 (시편 18:29) 강병철 144 2020.05.19 06:57
1881 예배자의 자격 강효민 219 2020.05.15 08:46
1880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때 (시편 12:1-8) 강병철 109 2020.05.12 07:47
1879 여호와께 피하는 복(시편 11:1-7) 조찬일 99 2020.05.11 22:31
1878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강효민 121 2020.05.08 09:29
1877 억울할때 (시편 7:1-5) 강병철 124 2020.05.07 13:55
1876 하나님이 함께하시면(시편 6:1-10) 조찬일 130 2020.05.07 05:56
1875 복 있는 사람은(시편 1:1-6) 강효민 144 2020.05.01 08:55
1874 여호와 삼마(에스겔 47:13-48:35) 조찬일 111 2020.05.01 07:06
1873 생수의 강(에스겔 47:1-12) 조찬일 122 2020.05.01 07:05
1872 부엌도 거룩합니다 (에스겔46:19-24) 강병철 136 2020.04.28 06:58
1871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에스겔45:1-8) 강병철 140 2020.04.28 06:51
1870 에스겔이 본 성전과 천년왕국 강효민 139 2020.04.24 08:59
1869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에스겔 38:1-16) 조찬일 162 2020.04.22 16:37
1868 하나됨이 시작입니다. (에스겔 37:15-23) 강병철 180 2020.04.21 09:09
1867 세일 산아, 네가 어찌… 강효민 199 2020.04.17 08:32
위로
RSS 2.0 | ATOM 0.3   
Total : 3,300,531
Yesterday : 3,127
Today : 2,325